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세계 대전 (문단 편집) === 전쟁 관련 === * 공식적으로 밝혀진, 1차 대전 당시 최후의 사망자는 [[캐나다군]]인 조지 로렌스 프라이스(George Lawrence Price) 육군 [[포병]] [[이병]]이다. 그는 1918년 11월 11일 종전을 단 '''2분''' 남기고 독일 육군 [[저격수]]에게 총을 맞아 전사했다. 다만 이날 그 한 명만 죽은 것은 아니고 종전까지 양측 도합 사상자 1만 1천여 명이 발생했다. 독일군이 예상보다 악착같이 저항했기 때문이다. 또 조지가 죽기 전에는 오전 10시 50분, 프랑스 참호의 오귀스트 트래비숑이라는 마흔 살 연락병이 11시에 따뜻한 음식이 나온다는 소식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몇 분 동안 뛰어다니던 오귀스트도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맞고 죽고 말았다. * 이 시기에 국가들은 최신 무기뿐 아니라 구식 대포는 물론이고 군마, 군견, [[전서구]], 낙타 등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해서 전쟁을 치렀다. 오죽하면 동물원의 [[코끼리]]를 징발해서 물자 수송에 쓸 정도였다. 그래서 1차 대전은 지금까지의 모든 전쟁 중에서 가장 많은 [[동물]]을 동원한 전쟁으로 기록을 세웠다.[[http://worldstory12.tistory.com/171|사진들]] 이후 벌어진 2차 대전에서는 기계화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1차 대전만큼 동물이 많이 동원되지는 않았다. * 프랑스와 영국은 미 원정군 병력을 전쟁 경험이 있는 자신들의 지휘 아래 보충 병력으로 사용하고자, 또 참호전을 아는 만큼 미 원정군 병력을 참호전에 적응시키고자 했지만 퍼싱을 위시한 미국은 독자작전권을 내세우며 거부했다.[* 이후 퍼싱은 [[미국-필리핀 전쟁]], [[남북전쟁]] 마냥 그릇된 병력 꼬라박기만 하다 독일군의 기관총 앞에 참호전의 위력을 체감하고 겨우겨우 참호전 전술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당시 [[흑인]]으로만 이루어진 미 육군 제369보병연대만은 프랑스에게 지휘권을 넘겨줬다. 이들은 프랑스 육군 장비를 지급받기도 했으며 프랑스 육군 16사단이나 161 사단에 배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은 열심히 싸웠으며 백명 단위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의 여러 명예훈장들을 받았다. *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1차 대전은 유색인종도 수백만 명이 참여했던 전쟁이다. 아프리카 전선에서도 200만 명 이상이 참전했으며 독일과의 인구 차이[* 프랑스 본토 인구 4000만 명과 독일 인구 6700만 명의 차이]와 인적 피해로 고심하던 프랑스는 [[세네갈]] 등지에서 시민권과 훈장을 미끼로 아프리카인 자원병들을 모아 유럽의 [[서부전선]]에 참전시켜 수만 명이 사망하였다. 프랑스는 이들을 거칠고 야만적인 [[총알받이]] 전사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위험한 임무에 우선 투입했고, 부대의 사망률이 프랑스 백인들보다 월등히 높아 항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영국은 영연방에서 수십만을 모집했고 일원이란 자부심과 자치권, 돈 등 다양한 동기를 위해 참여했다. 그나마 이들의 사망률은 영국 백인들보단 절반 수준으로 낮았다. 중국도 중국노동여단(영어: Chinese Labour Corps, 중국어: 中国劳工旅)이란 이름으로 노무자 수십만 명을 보내 전쟁터에서 노동력을 제공했다. <세계 대전: 제국의 잊혀진 병사들(The World's War: Forgotten Soldiers of Empire)> 등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러한 유색인종 병사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참고로 독일은 백인이 아닌 인종을 전쟁에 투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강해 적극적으로 식민지의 병사들을 유럽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설령 그럴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제해권을 장악한 연합군 해군의 눈을 피해 유럽으로 데려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군의 세네갈인 부대는 [[라인란트]] 등에 주둔했고 라인란트인들은 [[아돌프 히틀러]]나 오이겐 피셔같은 우생학을 신봉하는 [[나치]]에게는 [[아리아]]인의 피를 더럽히려는 음모의 결과로 받아들여져 불임 수술 등을 당했다. * 특히 [[인도인]]들은 민족 자결권과 정치적 지위 향상, 경제적 동기를 목표로 1차대전에 대규모로 참전하였다.[* [[마하트마 간디]] 조차 전쟁 초기에 인도 국민들의 적극적 참전을 독려하기도 했다.] 영연방전쟁묘지위원회(CWGC) 자료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인도인들이 모두 110만 5천 명 동원되었다. 프랑스 일대 [[서부전선]]에 13만 8천 명, 메소포타미아 지역 중동전선에 65만 7천 명,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14만 4천 명이 동원됐다. 일부는 [[갈리폴리 전투]]와 동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기도 했다. 특히 중동 지역에 투입된 영국군의 상당수는 인도인이었다. 1916년 4월 메소포타미아 쿠트 지방에서 [[오스만 제국]]에 붙잡힌 영국군 [[포로]] 1만 1600명 중 대다수는 인도인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인도는 전쟁 물자 수송을 담당하고 간호사들을 전선에 투입시키는 등 비군사적 영역에서도 큰 공헌을 했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7만 4천여 명이 사망하고, 6만 9천여 명이 부상당했다. 인도 [[뉴델리]]에는 1차대전 전몰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인디아 게이트’라는 추모비가 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407182049575|#]] * 서양권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을 직접 겪어 본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집안에 [[통조림]]을 많이 쟁여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전쟁을 겪었던 젊은 시절에 먹을 것이 없으니까 가족들이 매일 굶어야 했고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다고... 이렇다보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위기 상황마다 통조림의 인기가 올라간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우도 경제 수준 대비 통조림 유통량이 많다고 하는데 이것도 [[한국전쟁]]의 영향이다. * 장성 중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필리프 페탱]],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각국에서 구국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페탱과 힌덴부르크는 전쟁 후에 심각한 정치적 실책을 저지르게 되어 현대의 평가는 좋지 못하다.[* 힌덴부르크는 슐레지엔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가 있을 정도의 명망 있는 인물이었으나, 대통령이 된 후 '''히틀러를 총리(수상)에 임명'''하고 그 옆에 [[프란츠 폰 파펜]]을 붙이는 등 사실상 나치 독일의 시작을 열었으며, 필리프 페탱 원수는 훗날 패전한 3공화국의 수장이 되어 나치에게 항복하고 비시 정권을 세웠다. 다만 페탱의 경우에는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참작의 여지가 있으나 힌덴부르크의 경우 명백한 그의 실책이다.] * 독일군은 [[파리 대포]](Paris-Geschütz)라는 이름의 초대형 대포들로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영토 안에서 파리를 포격했다. 이 대포의 사거리는 무려 130 km. 파리 대포는 프랑스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안겨주었으며, 이때부터 제2차 세계 대전에 등장한 [[구스타프 열차포]]의 싹수가 보였다. * 전쟁 초기 [[벨기에 침공|리에주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독일군은 신무기인 [[크룹]]사의 [[https://www.modelsale.com/modelsale/poprec/detail.php?no=TKM2035&idx1=1&idx2=5&idx3=3&idx4=28|420 mm 곡사포]]를 동원했다. 이는 곧 빅 베르타(Big Bertha)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사람들은 종종 다른 독일군의 대형 포도 그냥 빅 베르타라고 불렀다. SF RTS게임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에 등장하는 초장거리 방어탑인 빅 베르타는 여기에서 명칭을 따왔으며,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에서 Big Bertha라는 치트키를 입력하면 말도 안되게 긴 사정거리와 데미지를 지닌 특수 투석기 하나가 소환된다. * 1차 세계 대전 당시 최고의 [[에이스]] 파일럿은 [[붉은 남작]](Der Rote Baron)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이다. * [[안도라]]와 [[코스타리카]]도 협상국으로 참전했지만 종전 때 깜빡해서 조약 서명국이 아니었다. 이러면 [[국제법]]상 계속 [[전쟁]]하는 걸로 취급된다. 2차대전에도 역시 참전한 안도라와 코스타리카 중 코스타리카는 다행히 2차대전 종전 때 승전국으로 서명했지만 안도라는 이번에도 깜빡한다. 다만 안도라의 외교권을 프랑스가 행사하고 프랑스가 독일의 항복을 받아줬기 때문에 실제로는 잠정적으로 종전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어쨌건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은 1958년에 안도라가 일방적으로 종전을 선언하고 독일에서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끝나게 된다. 국제법으로만 따지면 1차 대전은 1958년까지 이어진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